생각지대 공모전
'Be my Qlient'
Project Type
공모전
Schedule
2022.12.29(목) - 2023.02.18(일)
Location
서울시립북서울미술관 다목적홀
발제문
건축학과 학생들이 늘 되뇌는 단어 하나가 있습니다. 바로‘탈(脫)-건축’입니다. 현업에 종사하는 건축가들에게 ‘탈-건축’은 높은 업무강도와 낮은 금전적 보상 등 현실적인 문제와 직결되어 있겠지만, 학생들에게 건축에 대한 회의는 사뭇 다른 문제인 것으로 보입니다. 오늘날 진정으로 건축학도들을 지치게 하는 것은 과중한 작업량에서 오는 육체적 피로뿐만이 아니라, 디자인 스튜디오라는 교육방식의 본질적 모순과 그것에서 파생되는 끊임없는 의구심이야말로 학생들로 하여금 계속해서 건축이라는 학문에 전념할 정신적 동력을 점차 상실하고 ‘탈-건축’으로 내모는 주된 원인일지도 모릅니다.
모든 건축물의 경우에, 완전한 무의 상태에서 그 시원을 발견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하나의 건축물이 정립되기 위해서는 건축물에 영향을 미치는 수많은 요소들, 그 중에서도 이른바 근대 이후의 건축에서 역설하는 ‘기능’에 대한 고찰이 선행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현존재’가 아닌 것을 다뤄야만 한다는 점에서 스튜디오에서의 설계 과정에는 그러한 ‘기능’에 대한 고찰의 존재적 근거인 ‘사람’이 철저하게 배제되어 버리기도 합니다. 학생들은 건물 하나를 설계하기 위해 현존재가 아닌 허구의 즉자적 존재로서 이것을 때로는 클라이언트로, 때로는 사용자로 가정합니다. 사이트에 실제로 거주해볼 수 없다는 현실적인 상황 내에서 최대한 건물이 지어질 땅을 이해하기 위해 우리는 사이트를 답사하고, 사람들을 만나며 면밀히 분석하고자 많은 시간을 투자하지만, 일련의 과정을 통해 사이트에 대한 주관적 표상 이상을 체득할 것을 기대함은 지극히 낙관적인 시각에 불과합니다. 심지어 그들에게는 실제로 지어지지도 않을 건축물에서 사용자가 얻게 될 공간 경험을 피상적으로나마 예측하고 그러한 판단을 토대로 자신의 설계안을 매주 발전시켜 나가야 할 의무까지 가중되곤 합니다.
결국 학생들은 실체와 어느 만큼의 괴리를 가지는지조차 전혀 이해하지 못할 허구의 클라이언트와 사용자를 상정하고 허구의 사이트 위에 실제로 지어지지 않을 건물을 설계하게 됩니다. 단편적으로 수집된 정보를 토대로 학생과 교수자 사이에서 형성된 ‘사이트와 클라이언트의 시뮬라크르’는 어느 순간부터 현상계의 사이트와 클라이언트보다도 우리의 설계 프로세스에서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으며, 건축과 설계 프로세스의 대자적 주체가 되어야 할 클라이언트나 사용자들은 그러한 시뮬라크르 너머로 그 가치를 상실한 채 사라져버리고 말았습니다. 건축가와 클라이언트, 건축가와 사용자 간의 대화는 실종되고, 오직 그들의 시뮬라크르와 교수자만이 학생들의 설계에 목소리를 낼 뿐입니다. 결국 ‘사람’을 위한 것이어야 할 건축에서 휴머니즘은 사라지고, 목적과 방향을 잃은 채 ‘더 나은 건축’을 맹목적으로 추구하는 모순만이 남습니다. 그 과정에서 ‘사람’은 허식적인 설계안을 위한 부품으로 전락하여 사물화되기에 이릅니다.
이에 포럼 ‘생각지대’는 이번 공모인 ‘Be my Qlient’를 통해 사람과 공존해야 하는 건축의 존재적 필연에 집중하여, 학생 설계에서 현존재의 복구, ‘사람’과 대화의 복구를 역설하고자 합니다. 사람을 담는 그 공간의 경계를 물질로서 구축하는 역할을 부여받은 건축가로서, 존재하지 않는 허구를 창조하여 결코 사유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 사유할 것을 요구받는 아이러니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앞서 언급한 가치를 품을 클라이언트와 사용자의 복구가 필수적이라고 생각됩니다. 본 공모가 클라이언트와의 문답과 적극적 상호작용을 통해 변증법적 발전 그 자체인 건축설계 프로세스를 구현하는 하나의 단초가 되고, 나아가 학생들에게 오로지 자신 또는 교수자만을 위한 설계 과정에서 초탈하여 건축이 ‘사람’을 대하는 방식에 조금 다가설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클라이언트가 되실 70대의 원로 음악가께서는 자신의 생의 마지막 순간을 함께할 “죽음의 집”을 20대 학생들의 손을 빌려 설계하고자 합니다. 주택 설계는 다른 어떤 건축유형보다도 클라이언트와 건축가라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소통 과정이 중요하게 작용하기 때문에, 공모의 취지를 공고히 하기에 충분합니다. 참가자들은 클라이언트의 요청에 따르면서도 때로는 클라이언트가 희망할 궁극적 목적에 더 부합할 것으로 판단된다면 그가 추구하는 다른 방향으로 설득할 필요가 따를 지도 모릅니다. 클라이언트와 건축가의 관계에 대해서, 또 인간이라면 누구나 직면해야 하는 숙명인 죽음이라는 무게에 대해서 어떻게 해석하고 그것을 건축적으로 어떤 방식과 언어로 구현할 것인지 심도 있는 고민이 필요할 것입니다.
단순하게 클라이언트와의 시간을 가질 수 있다는 것만으로는 이번 공모전의 성격을 규정할 수 없습니다.
없던 것을 가짐으로써 또 다른 없는 것을 만들어 낼 수 있기를, 갈증을 느끼는 많은 건축인들에게 그 가치를 전달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학생설계에서 클라이언트란 과연 무엇일까?
실제의 클라이언트가 주어진다면, 과연 어디까지 나아갈 수 있을까?


